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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 하수도의 비밀 -
“.....”
“다시...내려가야겠죠?”
한숨 섞인 카나페의 말에 발렌타인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끔찍한 냄새가 꾸역꾸역 올라오는 하수도 입구를 무시무시한 괴물의 소굴을 바라보듯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가야한다면 괴물의 소굴이 더 나았다.
“...심한 가?”
두서를 생략하며 본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철썩 같이 알아들었고 그의 얼굴은 비통으로 일그러졌다. 참담하게 끄덕이는 모습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카즈가 재빨리 몸을 내빼려다 카나페에게 뒷덜미가 잡혔다. 그는 처음부터 가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으나 카나페가 ‘아이 찾는 것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를 계속 들먹이자 어쩔 수 없이 끌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몇 차례 도주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카나페에게 뒷덜미를 잡힌 것은 당연했다.
“그럼 어느 형제님부터 들어가시겠습니까?”
모두가 대답 없이 발렌타인을 빤히 바라봤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이왕이면 경험이 있는 자가 앞장서는 편이 안전하겠지.”
“네, 성표가 있으니까요.”
“하나가지고는 어림도 없지만 그 의견에는 찬성이야.”
그들은 발렌타인을 빼고 회의와 의논 그리고 결정까지 마치고는 발렌타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죠. 발렌타인은 울상을 지으며 다시 내려가는 사다리에 발을 올렸다.
안은 여전히 컴컴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발렌타인은 성표를 앞으로 비춰 일행이 내려올 수 있게 도왔다. 마지막으로 카즈가 내려오며 부싯돌을 꺼내 횃불에 불을 붙였다. 주변이 조금 더 밝아졌다.
“우엑, 몽블랑을 여관에 맡기길 다행이에요. 저번에 인간님은 어디까지 가보신거에요? 그 다음을 조사해봐야 할 것 같은데.”
“저쪽 앞에 교차로가 있는데 그 앞까지 다녀왔습니다.”
“딱히 특별한 점이 없었으니 그 앞까지는 가봐야 알겠군.”
그들은 발렌타인의 안내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분위기는 곧 무언가라도 튀어나올 듯 했지만 어제 발렌타인을 습격한 기묘한 몬스터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걸음을 빨리하자 생각보다 교차로까지는 금방이었다. 카나페가 교차로 앞을 카즈가 들고 있는 횃불을 들이대며 꼼꼼하게 살폈다.
[상황파악 2d6+1 : 10]
가는 방향은 정면, 오른쪽, 왼쪽. 그들이 온 방향까지 합쳐 사지교차로였다. 꽤나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후웅 거리며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정면에서만 불어오는 것으로 보아 다른 방향은 막혔을 가능성이 컸다.
흐으윽
“...!”
“무슨 소리지?”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커다란 통에 갇힌 것처럼 소리가 저 앞에서 크게 울렸다. 큰 공동이 있다는 말은. 그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카나페가 고개를 돌리다 흠칫거렸다. 벽에 이상한 물체가 붙어있다 했더니 횃불이 걸려있었다. 불은 붙어있지 않아 시커멓게 죽어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나름 관리는 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횃불이 있어요. 들고 갈까요?”
“나중에 다시 이쪽으로 와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놔두고 가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피워두면 일단 불이 지침이 되니까.”
본의 말에 카나페는 횃불에 불을 붙였다. 교차로가 불길 속에 밝아졌다. 이 정도 빛이면 멀리 가더라도 이곳은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정면을 향해 걸었다. 바닥은 오수가 그득그득해 여전히 변함이 없었지만 적어도 발렌타인이 발견했던 생물의 살점이나 사람의 뼈 같은 기분 나쁜 것들은 없었다. 단지 그들이 앞으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흐느낌 소리가 커졌다. 불안함에 발렌타인이 성표를 이리저리 정신없이 휘두르자 흐느낌 소리는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빛에 반응하는 건가. 본이 불쑥 발렌타인의 어깨 뒤에서 외쳤다.
“거기 있는 것 안다! 나와라!”
소리가 멎었다.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일순간, 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뚝. 뚝. 뚝.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 그때, 강한 바람이 불어와 횃불을 훅 꺼트렸다. 뭐야 하고 당황하기도 전에 카나페의 뒤에서 억 하고 숨 막히는 소리가 나더니 첨벙하고 물길이 튀었다.
[피해 1d6+1 : 2]
“방금 무슨 소리죠?”
혼란에 휩싸인 카나페가 다급하게 뒤를 향해 말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카즈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었다. 카즈가 젖은 몸을 일으키며 켁켁거렸다.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어...”
“스치고..입니까?”
“괜찮으세요? 앞은 좀 더 신중히 가야겠군요.”
“뭔가 질감이 있는 바람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어...”
“모두 주의하도록.”
그들은 걸음의 속도를 낮춰 경계하며 앞으로 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다른 횃불걸이가 하나 있었다. 카즈의 횃불은 조금 전의 사고로 놓쳐 잃어버렸기 때문에 마침 필요하던 참이었다. 이번에는 횃불을 들고 가기로 했다.
“제가 뒤에서 걸을게요.”
카나페가 횃불을 들고 말했다. 카즈가 뭐라 말하려고 하자 카나페가 단호하게 이어 말했다.
“다시 다칠지도 모르고 횃불을 제가 들고 있는 게 안심이에요.”
순서는 바뀌어 발렌타인, 본, 카즈, 카나페 순이었다. 다시 횃불하나가 살아나자 주변이 조금 보였다. 앞으로 가는 통로가 컸기 때문에 어두웠을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옆을 살피니 들어가는 틈이 있었다. 입구는 온통 거미줄투성이로 막혀있었다. 카나페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조금 뒤로 떨어졌지만 맨 뒤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발렌타인이 할버드로 거미줄을 걷어냈다. 그 앞에는 발렌타인의 키만 한 창살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너머에는 이 통로보다 큰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흐릿한 푸른빛이 보였는데.
“이쪽이야.”
누군가 발렌타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8, 9세의 어린 아이에 가까웠으며 아까 전의 흐느끼는 소리와 닮아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발렌타인은 숙였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형제님들! 이쪽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렌타인이 다급하게 일행을 향해 말했지만 카나페의 반응은 냉담했다. 본은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 들으신 거 아닐까요?”
“...그렇군, 일단 앞으로 가라.”
형제님들. 발렌타인은 아주 슬퍼졌다. 창살을 넘어가기 위해선 한명은 발을 받쳐 줘야 할 것 같았다.
“카즈가 도망가면 골치 아프니 제가 마지막에 넘어갈게요.”
“아닙니다, 카나페. 위험할지도 모르니 제가 마지막에 가겠습니다.”
“그럼, 본님은 카즈 다음에 넘어오는 걸로 해요.”
그들의 일방적인 대화에 카즈가 궁시렁거렸다.
“....이거 동료가 아니고 인질이구만.”
발렌타인은 가장 먼저 창살을 건너갔다. 뒤에서 차례대로 카나페, 카즈가 건너오고 있었다. 발렌타인이 바닥에 내려오자 두꺼운 나무뿌리 같은 게 밟혔는데 발을 떼려하니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발렌타인이 신발 밑에 달라붙은 것을 성표로 비추며 확인하려고 할 때. 이어 내려온 카나페가 갑작스레 소리를 질렀다.
“꺄악!”
“무슨....헉!”
“조심하십시오!”
집채만 한 검은 거미가 흉물스럽게 생긴 기둥 같은 다리로 그들을 향해 시시식 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여러 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직물을 짜는 기계 같았다. 거대 거미는 재주 좋게 통로 위아래를 왔다 갔다 거리며 그들을 향해 무섭게 달려왔는데 머리 부분에서 푸른빛이 반짝였다. 발렌타인이 본 빛은 거미의 눈이었던 것이다.
철퍽철퍽.
거미가 바닥에 깔린 오수를 밝고 그들의 앞까지 다가왔다. 거대 거미는 비명을 지른 카나페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본은 창살을 넘는 중이었다. 카즈가 본을 밑에서 잡아당겨주며 그를 도와주웠다. 카나페는 거미의 눈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사격 2d6+2 : 8] [공격 1d8 : 7]
거미의 속도가 너무 빨랐던 터라 카나페의 조준은 조금 빗나갔지만 화살은 거미의 오른쪽 앞다리의 관절에 박혔다.
캬아악
거미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발렌타인이 할버드를 들어 올리며 앞으로 크게 튀어나갔다.
[근접 2d6+1 : 3]
그러나 아까전의 나무뿌리 같은 것이 그의 발에 걸렸고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할버드를 놓쳐버렸다. 그가 신음을 삼키며 몸을 일으키려 바닥을 짚었는데, 그 덕에 성표의 빛이 바닥으로 비춰지며 그를 넘어트린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끈적끈적하던 나무뿌리는 바로 허옇게 질린 거대 거미줄이었다. 거대한 나무 덩굴처럼 겹겹이 겹쳐진 거미줄은 바닥과 통로를 따라 끝이 보이지 않게 쭉 이어져 있었다. 발렌타인은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보다는 거미가 더 빨랐다. 거미는 발렌타인이 걸린 거미줄을 끌어당겨 그를 공중에 매달려고 했다.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의 꽁무니에서 하얀 실이 그물처럼 분사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모두 천장에 매달리게 될 상황이었다.
“이런...!”
“으아아악!!!!!”
카나페는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 거미에 비명을 질렀다. 공포감에 거의 패닉상태였다. 다급하게 창살을 넘어온 본이 거미의 눈을 향해 활을 쐈다.
[사격 2d6+1 : 9] [공격 1d6 : 1]
본의 화살은 거미의 껍질을 파고들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거미가 본을 향해 거미줄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피해 1d6 : 5]
퍽
“아윽!”
거미줄이 본의 배에 정통으로 달라붙었다. 상황이 위험해지자 카나페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거미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눈에 다시금 화살을 날렸다.
[사격 2d6+2 : 12] [공격 1d8 : 3]
그러나 거미의 갑각은 너무나도 튼튼했다. 카나페의 화살은 거의 스치는 듯한 상처밖에 주지 못했다. 거미가 마구잡이로 다리를 휘둘렀다. 날카롭게 가시가 박혀 있는 다리는 그들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대신, 배에 거미줄이 붙은 본이 거미에게 끌려들어가려 했다. 본이 황급히 품에서 비상용 단검을 꺼내 배에 붙은 거미줄을 잘랐다. 강력한 거미줄을 어찌어찌 잘라낼 수는 있었지만 거미줄 범벅이 된 단검이 끌려갔다. 카즈가 옆에서 횃불을 들이댔다. 거미줄이 타들이 가며 단검이 떨어졌다. 불길은 거미줄을 따라 타오르더니 얼마 못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하수에 꺼져버렸다.
“카즈, 당신은 이런 거 본 적 없어요?”
“던전에나 있을 괴생명체이긴 하지. 그래도 잘 하면 못 쓰러뜨릴 놈은 아냐.”
카즈의 대답에 카나페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난 한 번도 못 봤단 말이에요. 그녀는 거의 울먹거릴 투였다. 본은 거미의 눈을 향해 활을 쐈다. 전부 큰 효과가 없긴 했지만 다른 곳은 더 가능성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격 2d6+1 : 7] [공격 1d6 : 1]
톡 하고 화살이 형편없이 날아갔다. 공격을 안 하니만 못했다. 거미는 이제 그들이 별 볼일 없는 대상이라고 단정 지은 것 같았다. 거미는 그들을 무시하더니 거미줄에 걸려 꼼짝없이 공중에 붕 떠있는 발렌타인을 거미줄로 감싸고는 되돌아가려고 했다. 발렌타인이 커다란 누에고치가 되어 납치당하자 그들은 우왕좌왕 거렸다. 본이 카즈의 횃불을 바라봤다.
“불로 태우자.”
“그럼 저 녀석도 통구이가 될 텐데?”
“거미한테 겁탈당하는 것 보단 낫잖아요!”
카나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본은 지체 없이 거미를 향해 기름병들을 던졌다.
[투척 2d6+1 : 7]
쨍그랑
그 중, 두 병이 거미의 몸에 맞아 깨지며 거미를 적셨다. 카즈는 재빨리 기름을 묻힌 천을 화살에 둘러 카나페에게 들려주고는 불을 붙여줬다. 카나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활시위를 당겼다. 불화살이 거미를 노렸다. 카나페는 애써 숨을 침착하게 고르며 시위를 놨다. 팽. 화살이 벼락같이 튀어나갔다.
[사격 2d2+2 : 6]
“아.”
화살이 거미를 맞히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망했다. 카나페가 시위를 당겼던 손을 부들 떨었다. 그 순간, 거미의 앞에 큰 불길이 확 일었다. 거미를 맞추지 못하고 본이 바닥에 던져버렸던 기름에 불이 붙으며 거미의 앞을 막은 것이었다. 거미가 쏟아지는 열기에 앞다리를 올리며 바동거렸다.
“..아, 아자! 얻어 걸렸다!”
카나페가 자신감 넘치는 기세로 불화살을 거미에게 날렸다.
[사격 2d6+2 : 13] [공격 1d8 : 3]
불화살이 명중하며 갑각에 박혔다. 불이 기묘한 냄새를 풍기며 거미를 태웠다.
캬악
거미가 몸부림을 치며 들고 있던 발렌타인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앞으로 도망칠 수 없어진 거미가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빠르게 기어갔다. 본이 거미의 뒤를 향해 화살을 쐈다.
[사격 2d6+1 : 8] [공격 1d8 : 1]
푝 하고 화살이 엉덩이에 맞더니 거미는 본의 화살을 꽁지에 달고 도망가 버렸다. 이어 기름이 다 타올라 불길이 잦아들자 통로에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는 발렌타인이 보였다. 본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 앞에 다가가더니 눈을 감고 기도했다.
“그는 신실한 동료였으니, 너그러운 자연의 인도가 있길.”
카즈도 묵묵히 뒤에서 묵념했다. 물론 발렌타인은 애벌레처럼 열심히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카나페가 한숨을 쉬며 거미줄을 단검으로 끊었다. 후두둑.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거미줄이 짐승의 배를 가르듯 갈라지며 발렌타인을 뱉어냈다. 발렌타인이 물고기마냥 퍼덕거리며 나왔다.
“.....감사합니다.”
“쟤 취향이 인간님이었나봐요.”
발렌타인은 초퀘한 기색으로 아무도 주워주지 않아 외롭게 누워있는 할버드를 주웠다. 할버드가 누워있는 꼴이 꼭 자신 같았다.
“저는...기왕이면 형제님들 같은 얼굴을 가진 분이 더 좋습니다...”
본은 자신을 치유하려고 했다. 다친 사람이 저밖에 없어 치유의 곡조를 연주해 회복을 하려는 찰나 그런 본을 카즈가 말렸다.
“거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다시 부르려고?”
그러면서 무언가를 주었는데 치료약이었다.
“감사하다.”
“카즈, 당신은 안 들고 다니는 게 대체 뭐죠?”
본이 상처에 치료약을 처덕처덕 바르고 있자 카나페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카즈가 어이없어 하며 그들에게 잔소리했다.
“너희가 이상한거지. 혼자 살려면 치료약이나 연고정도는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고. 그거 때문에 돈이 많이 필요한 거야. 돈이 있으면 목숨을 구하기 쉽거든.”
너무나 맞는 말이라 카나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거미가 나왔던 방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시 다른 거미가 나오면 어떡할 것이냐는 본의 말에(예를 들면 거미 엄마 같은) 카나페는 냉정하게 방에 불을 지르고 나오자고 대답했다.
[상황파악 2d6+1 : 7]
방은 거미가 머물 던 곳 같았다. 진득한 거미줄로 뒤덮여있었고 천장 위에 아까 전의 발렌타인의 누에고치 같은 것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뼈들로 밟을 때마다 바작바작 끔찍한 소리가 났다. 방은 거미의 둥지 같았다. 카나페는 소름이 돋아 몸서리 쳤다. 본이 누에고치 중 하나 앞에 서더니 주변의 막대를 주워 톡 하고 건드렸다. 커다란 고치가 빙글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고치 안은 미동이 없었다.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본은 단검을 꺼내들어 그대로 쭈욱 거미줄 안을 갈랐다. 비쩍 마른 손이 쑥 하고 튀어나왔다. 메마른 작은 손은. 분명 아이의 손이었다. 본은 다급한 손길로 고치를 파헤쳤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비밀이 드러났다. 푸석한 갈색 머리카락이 튀어나왔으며 신발이 벗겨져 시커멓게 멍든 한쪽 발이 들어났다. 마호였다.
“어떻게 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죠?”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다. 아이의 시체를 전부 꺼내자 죽음의 흔적이 확실하게 잘 보였다. 아이는 거미에게 당한 것치고 수상해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거미에게 당했다면 이빨에 찔린 마주보는 상처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아이의 가슴에는 깔끔하게 관통당한 한 개의 상흔만 남아있었다. 가슴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많이 흘렀는지 옷이 검게 젖어있었다. 아마 가슴에 칼을 맞고 죽은 뒤,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 같았다. 손목에 약한 타박상과 멍이 보였다. 분명 납치의 흔적이었다.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그 정도 크기의 거미가 마을에 나타났다면 사람들이 못 봤을 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누군가 먹이로 던져준 걸까요?”
본은 아이에게 조용히 기도 하고는 아이의 머리카락 한줌과 신발 한쪽을 잘 챙겨뒀다. 아직도 차가운 시체가 된 아이를 찾고 있을 부모를 위한 유품이었다. 카나페가 옆의 고치를 단검으로 갈랐다. 그곳에서는 다른 아이의 시체가 나왔다. 머리가 검은 아이는 죽은 지 오래 되었는지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카나페가 반사적인 구역질에 입을 막았다. 아이의 가슴에 같은 자리의 상처가 있었다.
“같은 수법인 것 같네요.”
“...부디 냥멘께서 돌보시길...”
발렌타인이 기도했다.
“범인은 아이만 노리는 살인범인 것으로 밝혀졌군.”
“흠, 거미를 쫓아가볼까요?”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카나페가 제안했다.
“더 가면 애들 가지고 이런 토 나오는 짓을 한 놈 면상 떼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
“왜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카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냐면 우린 갈거라서요.”
카나페가 자신과 본, 발렌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거미를 우리가 죽일 가능성이 있나?”
“아까 그렇게 어렵진 않다고 했어요.”
카즈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쟤네는...뭐랄까. 본능이 중심이라고나 할까. 아까 성기사님을 들고 도망갔잖아. 녀석은 우리랑 싸우는 것보다 먹는 거나 저장이 중요해서 그래. 그러니까 쉽다고 한 거지. 찾아서 기습한다면야...아니라면 둥지를 불태워도 되고. 내가 보기엔 그 거미는 너희 실력으로 못 잡을 놈은 아니야. 여긴 세 명이고 저건 하나잖아. 아니, 그리고 애초에 내게 결정권이 있기는 해?”
“길은 저쪽이네요!”
카나페가 씩씩하게 앞장서서 거미가 도망간 통로를 향해 걸었다. 카즈가 뒤에서 한숨을 쉬며 따라왔다.
통로로 나가자 벽에 길게 쓸린 자국이 나 있었다. 이 자국으로 거미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국은 모퉁이를 돌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본이 긴 귀를 쫑긋거리며 세우자 부우웅 하고 뭔가 공명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그 소리에 주의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가자 저 앞에 푸른빛이 보였다.
“눈알?”
하지만 거미의 눈이라고 생각하기엔 많이 컸다. 복도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빛이었다. 불안감에 발렌타인이 할버드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스스슥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엉덩이에 화살을 꽂은 거미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거미가 사라지자마자 그 빛은 문이 닫히듯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그들이 그 앞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에게 인사라도 하듯 반딧불처럼 빛나는 푸른 색 입자를 공중에 뿌리듯 남기고는 사라졌다. 푸른 색 입자가 공중에서 나울거렸다.
“본님, 이건 워프일까요?”
카나페가 본에게 물었다. 본은 그들 중 유일하게 마법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본은 침착하게 방금 봤던 상황을 떠올리며 시인의 학식을 되짚어봤다. 워프. 어릴 적, 본의 고향에 방문했던 음유시인이 부르던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마가렛과 푸른빛. 아주 오래된 옛 노래였다.
『현명한 마가렛은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는 쉬운 일이지요.
마법은 흔적을 남긴답니다.
바람을 타고 지맥을 타고 해류를 타고
조금의 에테르와 정확한 주문이면
당연히 찾아낼 수 있지요.
하지만 따라가지는 마세요. 그건 함정이에요.』
[마법의 곡조 2d6+2 : 12]
“어디로 가는 지 찾았습니다. 하지만...가시겠습니까? 억지로 포탈을 열게 된다면 당분간 전 마법의 곡조를 연주하는데 조금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당연하죠. 본님은 저와 인간님이 지킬게요.”
본은 마력을 끌어내며 플룻을 연주했다. 포탈의 마력과 음악의 공명의 파장이 같아질 때 까지, 푸른 입자들이 진동에 튕기듯 허공에서 퉁, 퉁 하고 튕기더니 다시금 아까 전의 밝은 빛이 허공에서 조금 벌어졌다. 아까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그들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지친 본이 숨을 몰아쉬자 카나페가 옆에서 부축했다. 그들은 포탈을 향해 걸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고마워. 발렌타인의 귓가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제 7화 - 하수도의 비밀 - (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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