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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 구세계의 보석과 이방인 -
밤이 깊었다.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아 고요했으며 하늘에서는 수천 개의 별이 각기 다른 빛으로 하늘을 수놓았다. 그들은 어찌 보면 아주 혼란스러울 상황이었으나, 이 느긋한 자연에 압도되었는지 별 다른 행동 없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활활 타는 모닥불에 둘러앉아 본은 은은한 눈길로 별을 관찰했고, 카나페는 나무 막대기로 몽블랑과 놀아주고 있었으며, 발렌타인은 냥멘에게 조용히 기도했다. 냥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발렌타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냥멘이시여...”
발렌타인이 감동받고 있을 무렵, 본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마을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생각입니다.”
발렌타인이 동의했다. 몽블랑이 지쳤는지 카나페의 다리 옆에 늘어져 평화롭게 헥헥거렸다. 카나페는 몽블랑을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
“어두운데 또 아까 그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요?”
“여기서 쉬는 것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어쩌지. 고민이 이어지는 가운데 본이 나섰다.
“저는 이런 상황에 아주 익숙합니다. 저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아주 나직하고 믿음 있는 목소리로 말해서 카나페와 발렌타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오오.”
“본님만 믿을 게요!”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초롱초롱 빛나는 카나페의 눈빛을 받으면서 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몽블랑이 갖고 놀던 나무 막대를 들고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속삭이듯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카나페는 문득 ‘그랜파…어쩌고’를 들은 것 같다) 본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뜸과 동시에 위로 세워 잡고 있던 막대를 망설임 없이 놨다.
[지식 더듬기 2d6-1 : 10]
나무 막대가 툭하고 느리게 떨어졌다. 그들은 모두 나무 막대가 쓰러진 방향을 주시했다. 발렌타인의 표정이 흐리게 변했다. 막대는 그들이 나온 동굴 입구, 이제는 입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곳을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발렌타인이 뭐라고 입을 벌릴 때, 순간 입구 옆 기둥의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 일렁였다.
“꺅, 또 뭐죠?!”
카나페가 이젠 싫다는 듯이 외쳤다. 본의 눈빛이 날카로워 졌으며 발렌타인은 그곳에 빛을 비추려 성표를 들이댔다.
“거기 숨어있는 것 다 알고 있으니 나오시오!”
“소속을 밝히십시오.”
그림자는 잠시 가만히 있다 다시 움직이더니, 어두운 그늘 밑에서 터번을 둘러쓴 누군가가 양손을 머리 높이 들고 순순히 나왔다. 그는 갈색 피부에 날렵해 보이는 체구의 남자였는데, 기묘하게도 어둠 사이로 청록색 눈만이 고양이처럼 고요하게 빛났다. 그의 발걸음은 성의 없이 대충 걷는 것 같아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엥?”
“그럴 줄 알았소!”
본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경계하며 그를 쏘아봤지만 발렌타인은 남자가 진짜 나올 때 작게 움찔거린 본을 보고 모르고 있었다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동업자끼리 이러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아?”
그는 성표를 들고 있는 발렌타인을 턱으로 가리켰다.
“성기사?”
엉뚱하다는 듯이 카나페가 되물었다.
“엥, 저 작자가 성기사? 어두워서 잘 안보이네.”
그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눈으로 발렌타인을 바라봤다. 그에 발렌타인은 조금 발끈한 것 같았다.
“신의 종입니다, 무시하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체를 밝히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오.”
“여기서 뭐하고 계셨던 거죠?”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인데, 왜?”
차례대로 질문이 이어졌으나, 그는 멋대로 양 손을 천천히 내리더니 본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원래 노예를 이렇게 풀어놓는 쪽이오? 영 시끄러운데.”
“노예...? ....이 분들은 노예가 아니십니다. 말씀을 함부로 하지 마시지요.”
라고 발렌타인은 카나페와 본을 두둔했으나 그들의 생각은 발렌타인과 정반대였던 모양이었다.
“여기 있는 발렌타인은 노예가 아니다.”
“당신을 노예로 본 것 같은데요. 인간님.”
발렌타인은 그들이 너무도 당당히 말하는 바람에 자기가 잘못들을 줄 순간 착각했다.
“본젤라또 형제님은 조용히 계시는 쪽이 도와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본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비록 노예처럼 보이겠으나 그는 내 동료다.”
“무슨 소리야, 귀가 길잖아. 아, 그럼 이방인인가?”
발렌타인이 조금 슬픈 기색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되었습니다. 이방인입니다.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흠, 소개가 필요한가? 나는 그쪽이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우리 모르는 척 넘어갑시다. 보아하니 당신들도 도굴꾼 같은데...”
그는 성의 없게 손사래를 쳤다.
“서로 그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런 위험한 곳에...틀렸습니다. 감히 냥멘을 모독하지 말아주십시오."
“도굴꾼?”
“나도 그쪽이 썩 궁금하지는 않소, 우린 도굴꾼이 아니오.”
각기 다른 반응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봐, 난 내 먹이를 가로챈 걸 봐주겠다는 거야. 여긴 몇 주 전부터 내가 찜해둔 곳이었다고.”
“당신은 도굴꾼인가 보군.”
“그곳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보물이 있는 걸로는 안보였는데.”
“뭐, 잘 알지. 근데 맨입으로?”
그는 손을 들어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본은 그것을 멀뚱하게 바라보다 발렌타인을 바라봤다.
“도굴꾼이 아니라 장사치 같은데.”
카나페가 본을 바라보고 발렌타인을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에 발렌타인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 금전을 요구하시는 겁니까? 신의 종, 성스러운 임무를 띤 자가 어찌 그런 것을 거래하겠습니까."
발렌타인이 단호히 금전 거래를 거부하자 그는 손가락으로 몽블랑을 가리켰다.
“그럼 쟤라도 팔던가. 좀 쓸모 있어 보이는 걸.”
“무슨 말씀을. 몽블랑은 형제님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몽블랑은 안돼요! 차라리 이 인간을 데려가요!”
카나페가 몽블랑을 끌어안으며 발렌타인을 뒤에서 밀었다. 발렌타인의 표정이 다시 슬퍼졌다.
“인간은 노예로도 값이 별로 안 된다고.”
본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혹시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을 알고 있나?”
“그러고 보니 이방인이랬지? 거, 조심하시오. 엘프는 희귀하니까. 내가 동업자만 좀 더 있었어도 노려볼 만했을 거 같거든, 당신들은.”
“무례한 말씀은 삼가시지요. 이 곳에 흥미는 없습니다. 도굴하신 것에 대해서는, 지금 제 눈앞에서 하지 않으시는 이상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냥멘께서도 직접 말씀하시진 않으셨으니. 그리고 그런 말씀은 조심하시지요."
발렌타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하자 그는 전혀 무섭지 않은 표정으로 놀랐다는 몸짓을 해보였다.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손에 아무것도 없는데, 신의 이름으로 죽이기라도 할 거요? 거, 무섭네."
계속되는 특유의 깐죽거리는 말투에 카나페는 화가 난듯했다. 카나페는 이를 으득거리며 본을 향해 말했다.
"본님 그냥 두들겨 패서 정보를 불게 할까요?"
"함부로 살생을 하지는 않습...고정하십시오, 형제님. 어찌 그 여린 손에 피를 묻히신단 말입니까."
발렌타인이 미소 지으며 카나페를 달래보았지만 그다지 도움은 못되는 것 같았다.
"아, 뭐 사막에서 헤매고 싶다면야 그러시던가. 거기 그쪽은 날 믿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말하는 방향을 잘도 믿겠네―"
"이봐요, 방금 말은 사과할게요, 근데 우린 아무것도 가진 게 없거든요? 차라리 돈이 될 만한 정보를 줘서 가져가는 게 이득 아니겠어요?"
"무슨 소리야. 여길 털었을 거 아니오."
그가 시큰둥하게 입구를 가리키자 카나페는 드디어 폭발했다.
"보물 같은 건 없었다고 했잖아요! 시커먼 놈들이 우글대던데 당신 혼자였으면 보물은 커녕 벽만 긁다 비명횡사 했을걸요?"
본은 씩씩거리는 카나페의 어깨를 진정하라는 듯 두 번 두드리고는 나섰다.
“우리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다. 여긴 언데드 밖에 없었다.”
"흠, 언데드가 있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턱을 감싸고 갸웃거렸다. 그때 다소 숨을 고른 카나페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아. 하고 탄성을 터트리고는 본과 발렌타인을 뒤에서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무슨 일입니까?”
“왜 그러십니까, 형제님?”
“본님, 인간님. 잠깐 이것 좀 볼래요?”
카나페는 본과 발렌타인을 마치 방벽을 두르듯 모여 서게 하더니 그 가운데서 자신의 가방을 조심스럽게 꺼내보였다. 그 안에는 푸른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구슬 두 쌍이 들어있었다. 본과 발렌타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멀뚱거렸다. 카나페는 그 표정을 보고 아. 하며 구슬을 주웠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저 사람이 말하는 게 이거 아닐까요?”
“이걸 보여주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감정을 해보는 쪽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무엇인지 알아야...물론 완전히 맡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판단이 됩니다.”
“그렇죠, 일단 주웠는데 찝찝하기도 하고. 일단 모르쇠로 일관할까요?"
“구슬이 두 개이니 하나만 일단 보여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때 아닌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기다리다 못한 도굴꾼 남자가 한숨을 쉬며 가까이 다가왔다.
“뭐, 우리 협상을 좀 할까?”
본은 양손을 활짝 벌리며 카나페의 앞을 막아섰다. 카나페가 황급히 구슬을 다시 가방 안에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남자를 바라봤다.
“무슨 조건으로요? 들어나 봅시다.”
“협상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형제님.”
“정보 교환이지. 어차피 털린 거, 나는 유감없다고. 진짜야.”
그는 의뭉스런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였다. 발렌타인이 카나페와 눈짓을 주고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응하지요,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들어갔다고 했지. 혹시 벽화, 보았나?”
그는 가방에서 나무 몇 개와 종이 부스러기를 꺼내더니, 어느 덧 불이 꺼져가는 모닥불에 다가와 불씨를 되살렸다. 그리고는 활활 타는 모닥불 옆에 태평히 앉더니 주변에 앉으라는 듯 손을 까닥였다. 그 건방진 손길에 그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할 수 없이 남자의 근처에 앉았다.
“벽화, 말입니까?”
“그래 벽화. 비슷한 거라도 있었어? 안에 대체 뭐가 있었지? 여기는 비어 있다고 들었는데, 언데드는 얼마나 있었고?”
“세, 네 마리..정도 였던가? 싸우느라 벽화는 본 기억이 없어요, 기억나는 거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언데드의 수는 여럿이었습니다. 아주 큰 것과, 작은 것들 몇몇이었습니다만...관이 많더군요.”
“우리가 있었던 곳은 공동묘지 같은 곳이었다. 관들이 아주 많았지. 벽화 같은 건 보지 못했다.”
“흠, 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벽화 여부는 모르는 거군.”
본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나페는 벽화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무슨 뜻이 담긴 벽화기에, 그걸 찾으시는 거죠?”
“벽화를 찾는 게 아냐. 눈을 찾는 거지.”
그가 손을 들어 터번의 그림자가 진, 자신의 눈을 검지로 툭 가리켰다. 불길에 비춰진 그의 얼굴이 붉게 빛났다. 남자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모두가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가 가리킨 눈이 일순간 세로로 길게 좁혀진 것 같았다.
“!”
“눈...말입니까?”
"구세계의 보석. 거기 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세계의 보석? 모두가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어떤 의미의 보석이지?”
“뭐, 아님 관 속에 있을 수도 있고...없을 수도 있고. 나도 몰라. 본 적이 없어서. 마법사들의 말로는 에테르의 조각이라고 하는데....당신들이 궁금해 하는 건 이게 아니지 않소?”
에테르? 다시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왔지만 그는 더 이상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는 손을 쭉 뻗어 어둠 저편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을로 가는 길은 저쪽이야.”
“저쪽입니까...마법사를 찾아보는 쪽이 좋겠군요. 마을에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만.”
“알려줘서 고맙다. 당신은 어디로 갈 생각이지?”
“당연히 나도 마을로 돌아가야지. 허탕을 쳤으니 새 정보를 모아야 하거든.”
그는 가볍게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카나페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그에게 질문했다.
“아, 저기,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벽화나 구세계의 보석이나 그런 정보 어디서 들 은거에요? 그런 쪽으로 잘 아는 사람이 있나요?”
남자는 육포를 거칠게 뜯으며 카나페를 향해 불량하게 웃었다.
“아, 밑천을 터시겠다?”
남자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무언의 표시를 해보였다. 으으으. 카나페는 지독하다는 듯 몸서리쳤다. 본은 가만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긴 손가락으로 카나페와 발렌타인을 콕콕 찔렀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카나페와 발렌타인이 의문을 띄며 본을 바라봤다. 본은 목소리를 낮춰 얘기했다.
“어차피 우리는 마을로 갈 것이고 저자도 마을을 간다니 동행을 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완벽히 믿을 수 없는 자이긴 하지만.”
“그도 간다고 하였지요. 그렇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카나페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장한 얼굴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
“아, 맞아요. 우릴 용병으로 고용했다 생각하고 마을로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이렇게 어두운 밤에 혼자 다니시면 위험 할 텐데?”
“이봐요, 자기 몸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이런 직업을 갖겠소?”
남자가 카나페를 비웃었다. 카나페는 약이 올라 이익 거리며 중얼거렸다. 자기 혼자 갔으면 죽었을 거면서.
“안 갔으니 의미 없는 가정이지. 다 들리오.”
카나페는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본은 카나페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자는 물욕이 많은 듯한데, 아까 중 구슬하나를 우연히 떨어트린 척을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반응을 살피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물건이면 저자의 태도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안돼요. 구세계의 보물이래잖아요. 저자가 가지고 튀면 어떡해요.”
본은 카나페를 설득했다.
“우린 아직 이 구슬이 보물인지 아닌지 모르지 않습니까?”
“음...그럼 은근슬쩍 보여주기만 해볼까요?”
“잠시 떨어트린 척을 하고 반응을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요, 빼앗기기 없기.”
카나페와 본은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 안에 있는 구슬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다행히 남자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던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으면 난 가보겠소.”
카나페가 구슬을 발아래로 얼른 떨어트리고 크게 호들갑을 떨었다.
“앗! 구슬이!!!!!!!!!!!!”
본도 그녀를 도와 철저한 자신의 기준으로 능청스러운 연기를 했다.
“이런! 동굴에서 얻은 구슬이!”
“신기하게 생긴 구슬이!!!”
그들의 이상한 행동에 이상한 표정을 지은 건 이 계획을 몰랐던 발렌타인 뿐이었다. 남자는 그들의 행동에 크게 움찔하더니 뒷걸음질로 그들에게서 도망가려 한 것이다. 카나페와 본은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엥? 하며 눈을 끔뻑였다.
“저,저,저,저,저,저기요! 이 구슬이 뭐 길래 그런 반응이에요?”
카나페가 떨어진 구슬을 줍고 다급하게 남자를 부르며 어깨를 잡았다. 남자의 어깨가 딱딱하게 경직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남자의 몸이 카나페의 방향으로 돌려지더니 카나페의 턱 밑에 날카로운 단검을 들이댔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발렌타인과 본은 황급히 할버드와 활을 들어 올렸지만 카나페가 어떻게 될지 몰라 자세만 잡고 있었다. 남자의 굳어진 입매가 매서웠다.
“글쎄, 그게 뭔 진 몰라도 그런 행동으로 사람을 잡으려고 하면 보통 함정이더라고. 자, 천천히 뒤로 가시지.”
“......제대로 안보셨구만?”
그녀는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별다른 수가 없었다. 카나페는 남자의 앞에 순순히 구슬을 꺼내들었다.
“이거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
남자는 그녀가 든 구슬을 바라보더니 조금 눈을 크게 떴지만 다시 침착하게 돌아왔다.
“안에서 주운 게 없다며?”
“보물이 없다고 했지 주운 게 없다고 하진 않았어요.”
그는 단검을 제자리에 집어넣더니 손바닥을 불쑥 내밀었다.
“이 손바닥은 뭐죠?”
“줘봐야 내가 아는 게 있나 살펴보지.”
“가지고 도망갈지 어떻게 알아요? 방금 내 목에 칼을 들이대 놓고?”
“아니면 그 거리에서 보라고? 자, 여기 내 옷에 달린 장식이 뭔지 보이오?”
그가 비죽거리며 비아냥대자 카나페는 콧방귀를 끼었다.
“눈이 안 좋군요. 인간. 저도 최소한의 대비책은 마련해놓아야겠어요. 몽블랑, 이리 온.”
그녀의 부름에 몽블랑은 날아오듯이 뛰어 그녀 옆에 섰다. 크르릉. 몽블랑이 남자를 보고 위험해 보이는 이빨을 드러냈다. 남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몽블랑을 보고 질색했다.
“이봐, 나도 목숨 귀한 줄은 안다니까. 이래서 모험가들이 싫어.”
“자, 가지고 튀었다간 몽블랑의 밥이 될 줄 알라고요.”
카나페가 구슬을 남자에게 넘겼다. 본은 매의 눈으로 남자를 쏘아봤다. 수상한 짓을 가만 두지 않겠다 라는 눈빛으로.
“여차하면 활을 쏘겠다.”
“네네, 알-겠쯥니다.”
불성실하게 대답한 그는 구슬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구슬에 은은한 달빛과 별빛이 반사됐다. 그 빛에 남자의 눈도 날카롭게 빛났다. 이리저리 구슬을 돌려보며 각도를 재보던 남자는 입을 열었다.
“흠, 하얀색에 가까운 푸른빛에, 수정 같은 결정... 구세계의 보석이 맞는 것 같은데. 눈을 찾는다고 했지만 진짜 이런 구슬형태일 줄은 몰랐군. 역시 마법사란 녀석들은...”
“구세계의 보석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물건인가?”
남자가 구슬을 카나페에게 되돌려 줬다. 카나페는 그 즉시 구슬을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마법사가 갖고 싶어 하는 물질이긴 하지. 미안하지만 더는 나도 몰라.”
그가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에 카나페는 황당했다.
“그게 끝이에요?”
“거 참, 여태까지 묻기만 해 놓고 안 알려준다고 또 트집이오?”
“아니, 뭐. 이게 무슨 어마어마한 숨겨진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거나 하면 댁도 소개비는 챙길 수 있잖아요.”
“솔직하게 말하겠네.”
본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본을 주시했다.
“우린 어두운 돌관에서 깨어났고 관을 나와 보니 그곳은 언데드가 있었다. 그 언데드를 겨우 물리치자 공동이 무너지려 하기에 서둘러 나왔다. 나온 곳이 바로 여긴 인데....아는 것이 진정 없는가? 뭐라도 좋으니 말해주면 좋겠군.”
남자는 터번 위를 긁적였다.
“못 믿을만한 소리인데......그게 사실이라면. 당신들 완전 몇 세기 전의 시체들이로군.”
“뭐?”
“몇 세기 전?”
“시체라니요.”
끔찍한 소리에 카나페, 본, 발렌타인. 모두가 싫어했다.
“우린 그런 언데드들이랑 다른 존재다.”
“시체일 리가 있겠습니까. 냥멘께서 순리에 어긋난 자를 그냥 둘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얼굴 반지르르한 시체 봤어요?!”
카나페가 본과 발렌타인을 가리켰다. 발렌타인의 얼굴이 유독 반질거리며 빛나는 것 같았다.
“그야 저거, 몇 세기 전에 있던 고대 유적이니까. 거기 안치된 관은 그 시대 사람들 일거고.”
“당신이 판단해 보기에 우리들이 시체로 보이는가?”
“그러니 못 믿을만한 소리라고 하잖아.”
그가 시큰둥하게 얘기했다.
“당신들, 사실 제대로 나한테 밝힌 것도 별로 없지 않소? 은근슬쩍 그러는 것도 웃겨서 봐주고 있는 거요.”
“미안하네요― 우린 가진 게 없는 모험가라서, 식량이라도 드릴까요?”
“됐소. 간만에 좀 재미있긴 했거든. 엘프도 만나고 말이야”
카나페가 아무렇게나 한 말에 남자가 기분 나쁘게 빙글 웃어보였다.
“기분 나쁜 웃음이오.”
“그래요, 정보 잘 들었어요. 나중에 만나면 밥 한 끼는 사드리죠.”
“동행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그만 떠나겠다. 잘 가시오.”
“그럼, 실례했습니다. 형제님.”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자도 같이 일어섰다. 이상한 말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갈 건데? 불이 아깝게 됐군.”
그는 흙으로 불을 덮어 꺼트리더니 그들보다 먼저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남자가 동행할 줄은 몰랐던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같이 동행하겠다고 했던가? 어쨌든지 간에 확실한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가기가 수월할 터였다. 먼저 같이 가자고 청했던 그들이 싫어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허둥지둥 남자를 따라갔다. 새로운 길과 새로운 장소로.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의 비밀을 밝힐 모험의 시작이었다.
제 2화 - 구세계의 보석과 이방인 - (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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