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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납치 그리고 새로운 동료 -

 

 

[척후 2d6 : 8] [보급담당 2d6 : 9]

 

마을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혹은 마을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더 빨리 도착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이틀을 꼬박 걸었으며, 다행이도 누군가의 습격이나 위협 같은 건 없었다. 남자는 마을의 입구가 보이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그들은 그를 딱히 찾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사도 없이 헤어져버렸다.

마을은 주변이 사막이었지만 긴 강이 마을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강과 그 주변에는 작은 배와 논이 있었다. 무역업과 농사가 발달한 것 같았다. 마을의 크기는 제법 컸고 외부의 성벽은 없었지만 큰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구세계의 보석 이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그들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빈털터리였다. 마을에 도착했더라도 가진 것이 없으니 이대로라면 분명 마을 밖에서 노숙을 해야 될 건 뻔했다. 유독 밖에서 노숙 하는 것을 불편해 했던 발렌타인은 냥멘 신전을 찾길 바랐다. 하룻밤만이라도 몸을 의탁하기 위해서.

 

[상황파악 2d6 : 6]

 

그러나 마을 어디에서도 냥멘 신전은 보이지 않았고 아예 신전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발렌타인은 크게 실망했다. 그들이 그렇게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을까,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점 심해지는 터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꽤 많이 집중됐다는 것을. 그저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노골적인 시선이었는데 그 시선은 유독 카나페와 본에게 심하게 쏟아졌다. 카나페와 본은 꼭 이상한 생물을 놀리듯 바라보는 시선에 기분이 나빠졌다.

 

차별은 좋지 않다.”

 

본은 큰 키를 이용해 카나페를 슬쩍 가려보았지만 그 시선이 더해졌으면 더해졌지 덜해지진 않는 것 같았다.

 

, 본님 고마워요.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라 좋진 않네요.”

여긴 아마 엘프가 드문 것 같습니다.”

 

애써 그렇게 위로하며 길을 걸었을까, 문득 가게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감상하던 발렌타인은 자신의 뒤편에서 황급히 벽 쪽으로 숨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상대는 발렌타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황한 듯 숨었으니까. 발렌타인은 상대가 숨은 벽을 노려보며 경계했다.

 

흐음. 누가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만.”

 

발렌타인이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카나페와 본은 놀라며 인상을 썼다.

 

? 이번엔 누구죠?”

골목으로가 유인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본은 카나페의 손을 잡고 그들이 가던 방향의 옆쪽에 난 샛길로 뛰었다. 뒤에서 발렌타인이 앗 거리며 쫒아왔다. 그들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자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도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꽤 들리는 것이 적어도 세 명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달리자 골목은 점점 어두워 졌으며 동시에 인적도 드물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막다른 길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헉헉 대는 숨을 고르고 상대를 기다렸다. 여차하면 공격할 태세로 무기를 뽑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행을 하던 상대도 숨을 헐떡이며 그들이 있는 골목으로 나타났다. 상대는 모두 다섯이었다. 그들은 손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나무 몽둥이와 밧줄을 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카나페와 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발렌타인이 할버드를 잡아 세우며 앞으로 나왔다.

 

뭐하는 놈들이지?”

납치하려는 모양입니다.”

우릴 왜 쫒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군.”

형제님들을 판매할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고하겠다. 우리에게 해를 입힌다면 우리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은 그들에게 경고했다. 당연하게도 그 경고는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거리를 좁히며 그들을 압박했다. 카나페는 귀찮아졌다.

 

그냥 때려잡고 돈이나 뜯죠.”

 

그녀의 말이 발단이 된 것 같았다. 상대는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명이 제일 앞으로 나와 있던 발렌타인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발렌타인은 할버드를 들어 올려 몽둥이를 막았다. 본과 카나페도 활을 들어올렸다.

 

[근접 2d6+1 : 8] [공격 1d10 : 1] [피해 1d6 : 4]

[사격 2d6+1 : 7] [공격 1d6-1d6 : 0] [피해 1d6 : 3]

[사격 2d6+2 : 5]

 

크윽.”

발렌타인!”

 

발렌타인의 할버드와 상대의 몽둥이가 서로를 스쳤다. 발렌타인은 몽둥이에 박힌 못에 살이 조금 찢어졌다. 본은 화살을 발렌타인을 공격하는 상대에게 날렸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상대의 어깨보호구에 부딪치더니 팅 하며 날아가 버려 아무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상대의 동료가 본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본이 몽둥이에 등을 맞으며 휘청거렸다. 카나페는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활시위를 재고 있던 중, 두 명의 남자가 카나페에게 달려든 것이다.

 

꺄악, 못생겼어!!!!!!!!”

 

카나페의 반응에 남자들이 화가 난 것 같았다. 한 명은 카나페의 활을 강제로 잡아끌어 화살을 쏘지 못하게 했으며 그러는 사이 다른 한명이 뒤에서 카나페를 밧줄로 휘감았다.

 

아악! 이놈들 뭐야!”

카나페!!”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 본이 카나페를 불렀다. 발렌타인은 여전히 몽둥이를 든 상대와 싸우고 있어 카나페를 도와줄 수 없었다. 발렌타인은 입술을 깨물며 할버드를 힘껏 휘둘렀다. 빨리 상대를 해치우고 카나페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근접 2d6+1 : 4] [피해 1d6 : 5]

 

그러나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상대에게 빈틈을 보였고 상대는 발렌타인의 허벅지를 가차 없이 내리쳤다. ! 큰소리가 나며 그 충격에 발렌타인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

 

본은 카나페를 밧줄로 감는 남자에게 화살을 쐈다. 그를 공격하려는 남자도 있었지만 카나페가 급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사격 2d6+1 : 8] [공격 1d6 : 2] [피해 1d6 : 1]

 

아악!”

 

화살은 카나페를 잡고 있는 남자의 팔뚝에 박혔다. 하지만 남자는 카나페를 놓지 않았다. 본이 화살을 쏘는 사이 본을 공격하던 남자가 발로 본을 걷어찼다. 그것을 본 카나페가 단검을 들어올렸다. 단검을 자신의 허리 뒤로 찔러 넣어 밧줄을 감고 있는 남자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근접 2d6 : 6]

 

안타깝게도 그녀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나페가 단검을 꺼내드는 것을 남자가 발견하고 화가나 그녀의 머리에 몽둥이를 휘둘렀다.

 

[근접 2d6 : 7]

 

. 아픈 소리와 함께 카나페가 축 늘어졌다. 그녀가 기절했다.

 

카나페!!”

 

본이 고함을 질렀다. 카나페가 기절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남자는 카나페를 어깨에 이고 그들이 달려왔던 골목으로 냅다 도망쳤다. 본과 발렌타인, 몽블랑이 남자를 따라 쫒아갈려고 했으나 세 명의 나머지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이대며 막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애가 탔다. 카나페가 잡혀가다니!

 

왜 이러는 것인가!”

 

본이 화가나 분통을 터트렸지만 이제 그들은 눈도 깜짝이지 않았다. 발렌타인은 할버드로 앞을 막는 남자를 내려쳤다.

 

[근접 2d6+1 : 7] [공격 1d10 : 4] [피해 1d6 : 3]

 

그들은 서로 공격을 교환했다. 발렌타인은 피를 제법 많이 흘리고 있었다. 본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마법의 곡조를 연주했다.

 

[치유의 곡조 2d6+2 : 10] [회복 1d8 : 6]

 

발렌타인의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카나페는 이미 골목 너머로 사라져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안돼....”

 

본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카나페는 완벽하게 납치당했다....그것도 동료들 앞에서.

 

!!!

 

거의 동시였다. 본이 탄식을 내뱉자마자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남자의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머리를 갈겨버린 것이다. 남자는 컥 하며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기절하며 뒤로 쓰러졌다. 그 광경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들은 제때 놀랄 수도 없었다.

 

여기서 사람 죽이면 범죄인거 아쇼?”

 

하얀색 터번의 천이 바람에 휘날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바로 마을 앞에서 헤어진 지 몇 시간도 안 된 도굴꾼, 남자였다. 그는 능숙하게 단검을 손 아랫방향으로 쥐고 기절한 남자를 받아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거 참, 내가 조심하랬잔수.”

 

그가 끙차 소리를 내며 기절한 남자를 질질 끌어 다른 남자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본은 그를 아주 반가워했다.

 

도굴꾼! 저자들이 카나페를 납치해갔다!”

 

남겨진 남자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매우 당황한 것 같았다. 특히나 기절한 남자가 중요한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가 겨눈 검에 우왕좌왕했다. 그는 그것을 쉽게 간파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피 보지 맙시다. 피 보면 경비병도 쫒아오고, 수배도 당하고, ?”

 

그는 인질을 잡고 거리를 벌렸다.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본과 발렌타인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릴 보내주면 인질을 풀어주겠다!”

 

본의 말에 그가 단검을 살짝 돌리며 인질을 위협하는 척했다. 남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서자 그는 본과 발렌타인에게 턱짓을 했다. 본과 발렌타인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히 있었다. 못 알아들은 것이다.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짜증을 내며 입으로 모양냈다. 일로 오라고. 이제야 그들은 그의 뒤로 쪼르르 도망쳤다. 그리고 그들이 뒤로 도망치자 남자는 위협하던 인질을 상대에게 힘껏 밀치고 달아났다.

 

이봐, 튀어!”

 

그들은 그 말대로 동시에 튀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본은 그 와중에 옆구리에 챙겼던 몽블랑을 놓아주었다. 비록 주인인 카나페가 없어 시무룩한 상태였지만 몽블랑은 본을 따라 달렸다. 그들은 뒤에서 나는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달렸다. 골목골목 굽어진 길을 달리고 이상한 곳을 헤맬 땐 남자가 그들을 질질 끌며 길을 안내했다. 그렇게 달린 끝에 그들은 추격을 겨우 떨쳐낼 수 있었다. 모두가 끝까지 숨이 차올라 말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본은 헉헉거리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감사를 표하겠습니다....형제님..”

컹컹!”

이봐들...!...내가 그래서 조심하라고 했잖아...!”

 

모두의 감사에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받았다.

 

왜 저들은 우리를 납치해가는 것인가?”

 

본은 도대체 모르겠다는 순수한 눈으로 물어봤다. 답은 간단했다. 남자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엘프는 돈이 되니까. 그 귀 정도는 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당신들 정말 멍청하군.”

우리는 돈이 없다. 엘프가 뭐가 돈이 된다는 것인가!”

거야, 계속된 사냥에 다들 숲으로 숨었으니... 희귀할 수밖에 없지 않아? 여기는 사막이야. 다른 도시처럼 생각하면 안 돼. 팔 수 있는 걸 모두 팔아야 물을 살 수 있었을 때도 있었어.”

 

그 말에 본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엘프를 사냥하고 거래하다니! 자신이 살던 곳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카나페가 어찌될지 너무 끔찍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구해야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카나페를 구해야해.”

 

본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고 다시 한 번 남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도와줘서 감사하다. 실례가 아니라면 이름을 물어볼 수 있는가? 나는 하늘 숲의 어린 가지, 겔리안의 후손, 본젤라또 라고 한다.”

저는 발렌타인입니다. 형제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녀가 납치된 곳을 알고 있습니까?”

지나가는 길이었으니, 감사는 됐어. 정말 감사하면 돈으로 달라고? 이름은..., 이름은 카즈다. 그 엘프라면 야시장으로 가겠지. 노예 경매가 열릴 테니까...”

 

카나페가 노예 경매라니. 본은 아연실색했다.

 

언제인지는 나도 잘 몰라. 나는 그런 데 가까이 가기는 좀 그래서.”

 

카즈가 살짝 가리고 있던 자신의 눈을 보여줬다. 그의 눈은 그를 처음 만났던 날 봤던 청록색 눈동자였는데 그 눈은 확실하게 인간과 다른 세로형의 동공이었다. 발렌타인이 그에게 사과했다.

 

. 미안합니다, 형제님. 저 혼자 가기는 곤란할 터인데. 괜찮습니까, 본젤라또 형제님?”

난 상관없다. 카나페를 구하는 게 우선이니...”

구하러 가려고?"

 

본과 발렌타인의 이야기에 카즈가 놀랐다는 듯이 물어봤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내 귀를 가려야겠군.”

이게 있다면, 사는 게 더 빠를 텐데. 물론 그녀의 짐은 다 잃겠지만.”

 

카즈가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손가락으로 돈 모양을 만들었다.

 

짐은 괜찮습니다. 돈을...구할 방법이라. 그렇다면...”

 

발렌타인은 말끝을 흐리고는 본에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가 얻은 구슬을 판매하는 건 어떻습니까?”

 

카즈는 몰랐겠지만 이건 중요한 비밀이었다. 그날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혹시나 벌어질 상황을 대비(예를 들어 카즈가 구슬을 들고 도망친다거나)해 구세계의 보석 중 하나는 본이 보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본은 가방에서 구슬을 꺼내 카즈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걸 팔면 얼마나 나올 것 같은가!”

이걸 판매할 법한 곳이 있겠습니까?”

 

다급한 그들의 질문에 카즈가 머리를 긁적였다.

 

마탑이라면 언제라도 사주겠지만, 이 도시 안엔 없어. 그걸 팔기도 전에 노예 경매가 끝날걸.”

곤란하군요...”

 

발렌타인과 본이 시무룩해졌다. 돈으로 카나페를 되찾는 방법은 무리였던 것이다. 본은 고심했다. 그러다 생각이 떠올랐는지 카즈에게 제안했다.

 

이걸 당신에게 담보로 넘기는 대신,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는 건 어떤가?”

담보? 그럼 갚겠다는 소린가?”

 

카즈가 흥미를 보였다.

 

당연하다.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딴 구슬보다 카나페를 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마탑에서 판매한 다음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냥멘의 이름을 걸지요.”

매우 끌리는 조건인데.... 나도 엘프를 구매할 만한 돈은 없어. 그런 돈이 있었으면 도굴꾼 같은 직업 때려치웠지.”

엘프를 구매할 돈을 빌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내 귀를 감출 수 있는 로브를 살 돈. 그리고 네 힘을 빌려줬으면 좋겠다.”

괜찮겠습니까, 본젤라또 형제님.”

 

걱정스럽게 발렌타인이 쳐다보는 가운데 본은 진실한 눈빛과 얼굴로 카즈를 당당히 바라봤다.

 

그 정도야. 그 정도는 공짜로라도 해 주지. 의리 있는 사람은 별로 싫지 않거든. 이렇게 빚을 지워두면 언젠간 나도 도와줄 테고.”

고맙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카즈는 기꺼이 본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카즈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직접 그의 집을 안내하며 그들을 초대까지 했다. 그의 집은 한적한 외각에 위치해 있는 2층집이었는데, 기둥이 살짝 기울어져 그 기둥을 타고 초록색 덩굴이 구불구불 자라나 있었다. 2층의 창문 너머로는 화분이 보이는 자연 친화적 느낌의 집이었다.

 

실례하겠다.”

 

본은 카즈의 집에 들어가서 물을 마셨다. 벌컥벌컥 들이 마시는 모양이 꽤나 목이 말랐던 모양이었다. 카즈는 베이지색 로브를 하나 꺼내 본에게 던져줬다.

 

이게 네 키에 맞을 거야. 편하게 있도록 해.”

후진 패션이지만 어쩔 수 없군....”

 

본은 후드를 주섬주섬 끼워 입었다.

 

그런 걸 신경 쓰실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형제님, 혹시 제게 맞는 로브도 있으십니까?”

형씨는 너무 큰데. 가서 사 입으라고. 난 잠시 볼 일이 있어서.”

 

카즈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본과 발렌타인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금방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전투 준비를 해야 하니 다 같이 시장에 들려 사는 것이 효율적 이였다. 일단 발렌타인이 급한 건 목욕이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목욕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발렌타인에게 목욕은 매우 중요했다. 정확히는 성기사에게. 성기사는 깨끗하게 몸을 정화하고 나서 자신이 따르는 신에게 진실히 기도하여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고할 수 있었는데 그 임무가 신의 윤리에 따르는 것이라면 신은 그것을 받아들여 두 가지의 축복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지켜야할 원칙을 요구하는 데, 그 원칙을 조금이라도 어길 시, 신은 축복을 바로 거두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성기사에게 있어서 임무는 성스러운 것이었으며 반드시 지켜야할 맹세와도 같았다. 발렌타인은 몸을 씻고 카즈의 아담한 욕조에 앉아 냥멘에게 기도했다.

 

냥멘이시여....오늘도 간악한 형제님을 굽어 살피시고, 위험에 빠진 형제님을 도와주시옵서서...카나페 형제님...부디 무사하시기를...”

 

먀옹-

 

그의 간절한 기도에 냥멘의 울음소리가 성스럽게 욕실에 울려 퍼졌다. 그는 냥멘에게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카나페를 수호하겠다고 맹세했고 냥멘은 발렌타인에게 두 가지 축복을 내려주었다.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 고양이의 직감과, 날붙이에 상처입지 않을 보드라운 가죽처럼 단단한 보호를. 대신 비겁한 전술이나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명예롭게 싸우기를 원했고 악한 것을 살려두지 않고 용맹하게 싸울 것을 약속했다. 발렌타인은 맹세했다. 그의 이마에 냥멘의 말캉한 발바닥이 닿았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신성한 임무의 맹세가 끝난 것이다. 발렌타인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 본이 식탁에서 식량을 챙기고 있었다. 주방을 뒤졌지만 먹을 만한 것이 2인분 정도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목욕은 다 끝났나 보군. 시장에 들려 화살을 좀 사야겠다.”

 

그들은 시장으로 갔다. 다행이 카즈가 본에게 준 베이지색 로브 덕에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본은 무기점에 들려 화살을 샀다. 카즈가 준 돈은 10닢이었는데, 화살은 3개에 1닢이었다. 그는 12개의 화살을 사고 4닢을 지불했다. 발렌타인은 로브를 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제일 예쁘고 좋은 재질로 만든 로브를 원했으며 그런 로브는 시장에 있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런 걸 살 돈도 없었다. 본은 발렌타인을 타박했다.

 

넌 인간이니, 그냥 돌아다녀도 괜찮을 거 아니냐.”

 

발렌타인이 시무룩해하며 포기했다. 본은 고개를 절레 흔들며 플롯을 들어 마법의 곡조를 연주했다. 전투로 다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치유의 곡조 2d6+2 : 8] [회복 1d8 : 6]

 

본의 상처는 말끔하게 나았지만 그의 연주가 공명을 일으키며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듣기 싫은 고음을 울렸다. 모두가 그들을 째려봤기 때문에 그들은 할 수 없이 도망치듯 빨리 카즈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카즈의 집으로 귀환했으나 아직 카즈는 돌아오지 않았다. 카나페를 구하러 가는 것이 급하긴 했지만 그 만큼 카즈의 도움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본은 몽블랑에게 카나페를 찾아주길 부탁했지만 몽블랑은 전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는 카나페가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물건인 구세계의 보석을 꺼내서 몽블랑의 코에 갖다 대며 이 냄새를 맡고 카나페를 찾아가 주길 원했지만 몽블랑이 킁킁 냄새를 맡더니 입을 활짝 벌려 구슬을 깨물려고 한 덕분에 구슬을 다시 가방 속에 봉인해야만 했다. 발렌타인은 집안 이곳저곳을 뒤져보며 카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 서랍위에 놓인 카즈가 사용하는 단검과 투척용 단검을 주머니에 챙겼으며 그 이외에도 튼튼한 밧줄과 옷장 한편에 말린 캣닢도 챙겼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옷장 서랍까지 뒤져 카즈의 팬티까지 찾아냈는데, 그것은 남색의 면으로 만들어진 뽀송뽀송한 사각 팬티였다. 발렌타인은 그것을 기꺼이 주머니에 챙겼다. 저 멀리서 카즈의 경멸스러워 하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발렌타인은 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더 이상 미련 없다는 듯 개운한 얼굴로 카즈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카즈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왔군! 카즈! 어디를 갔다 왔나? 찾았다네.”

 

본이 그를 반겨주었지만 카즈는 활짝 열려 있는 찬장 문이라든가 제대로 닫지 않은 서랍, 파헤쳐진 화분, 그리고 마침내 옷장 서랍사이로 삐져나와있는 속옷까지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경멸 가득한 눈빛을 쏘아보였다. 그는 대답 없이 그들이 한 행동을 보란 듯이 턱짓을 했지만 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며 이상한 소리를 해댔고 발렌타인은 그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기 집처럼 있으라는 게 진짜 자기 집처럼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카즈는 첫날 밤, 카나페를 공격할 때만큼이나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렌타인은 그 말에도 뺀질거리며 화사하게 웃어보였다.

 

저는 제 집에서 이렇게 지내지 않습니다, 형제님. 일단 제 얼굴을 보고 화를 푸시지요.”

 

[매력 판정 2d6+2 : 11]

 

그의 말도 안 되는 말에 카즈는 때리고 싶었지만 차마 웃는 얼굴에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던 모양이었다. 주먹을 꾹 쥐고 들어 올렸지만 멈칫거리며 볼에만 살짝 댔다 떨어트린 것이다. 그는 깊게 한숨 쉬며 말했다.

 

이번만 봐주는 거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이 은혜는 꼭 갚을 터이니 걱정 마십시오.”

 

카즈는 다시 한숨을 쉬며 방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을 챙기고 후드를 쓰고 나왔다.

 

이제 카나페를 구하러가야 한다.”

, 이런 걸 하고 놀 길래 구출 생각은 다 까먹은 줄 알았지.”

설마요.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드디어 각각 장비를 갖춘 채 밖으로 출발했다. , 발렌타인, 몽블랑. 그리고 카즈. 그렇게 그들은 카나페를 구하기 위해 비장하고도 무거운 발걸음을 당당히 옮겼다. 부디 그녀가 무사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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