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 6화 - 아이를 찾아서 -
“아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그들은 옆집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데 가끔 저희 가게에 식사를 하러 온답니다. 아직도 아들을 찾아 헤매고 있나 봐요. 광장부터 뒷골목까지 돌아다니는 모양인데...도시가 넓다 해도 이미 다 뒤져보았을 텐데...시체도 못 찾은 걸 보니 역시...”
여관주인이 무서운 상상을 한 듯 어두운 낯빛을 띠웠다. 그들이 아이를 찾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옆집의 부부를 만나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아이를 찾아다니는 터라 가게 문은 꾹 닫혀있었고 그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여관주인에게 아이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뭐, 별 다른 말은 없었나? 빚을 졌다든가 아니면 아이가 특이하게 생겼다던가?”
“그렇게 순박한 부부가 어떻게 빚을 지겠어요? 아이가 특이해봤자 얼마나 특이하겠어요. 잿빛이 도는 갈색 머리카락에 짙은 호수색의 눈인데...그냥 아이랍니다. 키도 요만하니...”
그녀가 자신의 허리 위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키를 쟀다.
“갈색머리, 파란 눈. 아이 이름은?”
“마호에요. 여기에 스프를 사러 자주 왔었지요.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하는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조금 있어요.”
그녀는 최대한 아이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려 애썼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뒷골목에도 가보는 것이 좋겠군요.”
“모험가들이면 역시 한 싸움 하겠지만, 뒷골목은 역시 조심해요. 건달들이 많으니까.”
발렌타인의 말에 그녀가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카나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잡아서 패면 돈이 되겠네요.”
“잡혀가면 또 고생이라는 걸 알아두고.”
카즈가 옆에서 투덜거리자 카나페가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째려봤다. 눈에서 불꽃이라도 나가는 듯 맹렬한 기세였다. 발렌타인이 옆에서 카나페를 다독였다.
“걱정 마십시오. 괜찮을 겁니다.”
그에 화가 풀린 카나페가 어디부터 갈 것인지를 의논했다.
“시장어귀는 어때요? 사람이 많은 곳이 정보가 많을 테니. 마을 꼬마들에게도 물어 보고요.”
“예, 마주치는 분들께도 여쭤보지요.”
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일단 카나페의 말대로 시장에 가자. 아이의 친구나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군.”
그들은 시장으로 갔다. 신선한 사과가 세 개에 1닢! 시장은 물건을 팔려 홍보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시장은 수도답게 아주 크고 넓었으며 정신없었다. 카나페는 여럿이서 모여 노는 아이들을 찾아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상황파악 2d6+1 : 5]
그러나 사람이 너무 북적북적 거려 말을 걸 만한 아이들을 찾지 못했을 뿐더러, 설상가상으로 누군가가 카나페의 어깨를 세게 치고 지나가 카나페는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 야!!! 눈을 어따 달고 다니는 거야!!!”
카나페가 고함을 지르며 화를 냈지만 이미 상대는 누군지도 모르게 사람들 틈으로 사라진 뒤였다. 카나페는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발렌타인이 카나페를 도와주려하다 실패한 민망한 손을 거둬드리며 걱정했다.
“괜찮으십니까?”
“다음에 만나면 팔을 부러트려주겠어. 괜찮습니다. 인간님.”
“괜찮으시다면 다행입니다...”
이를 으득 갈며 살벌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발렌타인은 흠칫하며 그녀에게서 한발자국 멀어졌다. 발렌타인은 주변의 상인에게 아이들이 모여 있을 만한 장소를 물어봤는데 상인은 물건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발렌타인은 사과를 파는 상인에게 사과 세 개를 1닢을 주고 샀다.
“실례지만 여쭐 것이 있습니다. 혹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을 곳을 아십니까?”
“오, 아이들이요? 지저분한 아이들이라면 저 골목 너머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겁니다. 만나려면 소매치기를 좀 조심하셔야겠지만요.”
상인이 맞은 편 골목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골목입니까. 감사합니다. 냥멘의 가호가 있기를.”
발렌타인은 사과 두 개를 카나페와 본에게 나누어줬다. 카즈가 뒤에 서있었지만 막상 당사자는 고기가 아니라서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머, 고마워라. 잘 먹을게요. 인간님.”
본은 사과를 대충 옷에 닦고는 와작와작 깨물어 먹었다.
“별말씀을요.”
발렌타인이 아주 예쁘게 카나페를 향해 웃어보였지만 먹음직스럽게 익은 사과에 정신이 팔린 카나페는 보지 못했다. 발렌타인은 그 웃음 그대로를 상인에게 보여줬다. 상인이 친절하게 마주 웃어주며 그들을 배웅했다.
골목은 예전에 카나페가 납치됐던 골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카나페가 한숨 섞인 말투로 일행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이상한 놈들한테 잡혀간다면. 날 버리고 가요.”
“아닙니다, 버리고 갈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웅크려 앉은 아이가 두 명 보였다. 아이들은 그들이 다가가자 경계하는 모습이었는데 발렌타인이 사과 하나를 반으로 쪼개 아이들에게 반쪽씩 각각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사과를 받고 쭈뼛대며 발렌타인의 눈치를 봤다. 발렌타인이 친절한 미소로 웃어보였다. 서글서글한 눈이 정말 착하고 친절한 사람처럼 보였다.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혹시, 여관 옆집 부부의 아이인 마호 형제님을 아십니까?”
둘은 눈동자를 왔다갔다 거리더니 서로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다.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으니 천천히 말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다시금 발렌타인이 예의 그 친절해 보이는 웃음을 짓자 망설이던 아이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걔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요.”
알쏭달쏭한 말에 본이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실종됐던 어제, 특별한 점은 없었나? 뭐라도 말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몰라요. 우린 뒷골목에서만 지내서. 걔는 바깥을 돌아다니잖아요.”
“...걔는 못찾아요.”
다른 아이가 불쑥 말했다. 모두가 그 아이를 쳐다봤다.
“샌드맨이 데려간 게 틀림없는데 어떻게 찾아?”
“바보야, 그건 형들이 너 겁주려고 하는 거야. 그냥 설화라고.”
샌드맨?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들은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봤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투닥거리자 카나페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샌드맨이 뭔지 말해줄 수 있니?”
“밤에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애들을 잡아가는 할아버지요.”
“...아이들을 잡아가는 할아버지....입니까?”
발렌타인이 형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괴담에 어리둥절 거렸다. 발렌타인의 형, 율리우스는 어릴 적 발렌타인을 놀리려 온갖 괴담이란 괴담은 다 들려주었는데, 샌드맨 할아버지에 대한 괴담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돌아다니는 애들을 재워서 짊어지고 간대요.”
“혹시 샌드맨을 본 사람이 있을까?”
괴담을 반신반의하며 카나페가 물었다.
“없어요, 없을거라고요. 애초에 거짓말이라니까요. 그런 거.”
다른 아이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부정했다. 샌드맨 이야기를 꺼낸 아이가 그 단호한 대답에 우물쭈물 거렸다.
“근데 그러면 걔 신발이 저쪽 골목에서 나올 리가 없잖아. 그 아줌마 엄청 울었다구.”
“신발?”
아이의 신발을 부모가 찾은 모양이었다. 중요한 정보에 본과 발렌타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샌드맨 소문이 언제부터 생겼나?”
“어느 골목입니까?”
“음, 한달...? 신발은 저쪽 골목에서 나왔대요.”
아이가 고개를 갸웃대며 손가락으로 저편 골목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뒷골목 이였지만 아이가 가리킨 골목은 더 어두워 음습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밤에 나온다고 했죠. 밤까지 숨어서 기다릴까요? 아, 아니야...아이만 노린다고 했었지.”
“근데 아줌마랑 아저씨들은 이런 거 알아서 뭐 하게요?”
다른 아이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그들에게 캐물었다. 아줌마, 아저씨? 아까부터 틱틱 대는 행동을 보아 일부러 그런 표현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이 꼬마 녀석이. 카나페는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샌드맨에 물 뿌려버리게, 눈 낮은 꼬마야.”
그녀의 말에 아이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애들이니까요. 발렌타인이 카나페를 달랬다. 카나페는 알게 뭐람 이란 표정을 지으며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는 골목을 바라봤다. 발렌타인은 황급히 수습하듯 아이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을 찾을 예정이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냥멘의 가호가 있기를.”
그들은 마호의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쾌쾌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지저분한 골목이었다. 그들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샅샅이 살펴봤다.
[상황파악 2d6+1 : 9]
골목길은 세 갈래로 이어져 있었다. 한쪽은 막혀 있었지만 다른 길을 따라가면 도시를 관통하는 강의 줄기로 갈 수 있었다. 또 다른 길은 뒷골목과 연결되어 있어서 조금 위험한 변두리로 갈 수 있었다. 골목은 주변의 건물에서 나온 하수를 모아서 강으로 흘려보내는 하수 시설이 있었는데, 코를 공격하는 악취의 원인이었다.
“우웁.”
카나페가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았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샌드맨이란 놈이 여기서 잠복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비위도 좋은 놈일세.”
그들은 뒷골목과 이어지는 길을 선택했다. 아이가 납치당했다면 강이 나오는 곳으로 범인이 가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거리는 예상했던 대로 어두웠다. 좁은 건물들 사이로 빨랫줄이나 천막들이 어지럽게 엉켜있어 그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사람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았고 저 골목 너머에서 웅성 이는 소리만 들렸다. 최근에 여기를 지나간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지만 결과적으로 큰 소득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벌써 저녁이었다.
“저녁에 뒷골목을 돌아다니면 귀찮아져.”
카즈가 돌아가자는 뜻을 내비췄다.
“샌드맨이 잡아갈까봐 무서운가봐요? 카즈.”
“샌드맨이 무섭습니까? 귀여우십니다.”
카나페와 발렌타인이 웃으며 카즈를 놀렸다. 카즈는 팔짱을 끼고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흠, 네가 술병을 휘두르는 취객이랑 길가에서 마주쳐봤어야 하는데. 진짜 귀찮다고.”
“으음...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샌드맨을 만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찌하는 게 좋겠나?”
“내가 생각한 걸 좀 말해볼까?”
카즈가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좋으실 대로.”
“좋다.”
“예, 부탁드립니다.”
“꼬맹이 말 기억나? 샌드맨은 설화라는 거. 그건 나 어렸을 적에도 있었어. 그러니까 너희가 찾는 '진짜 샌드맨'은 나오지 않을 거다.”
그가 양손을 들어 따옴표를 그리듯 손가락 두 개를 꼼지락 거렸다. 가짜라는 의미였다.
“그게 요새 들어 유행하는 건...어린애들이 많이 사라지니까, 부모가 설화를 빌려서 경고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우린 헛다리짚는 게 되는데. 물론 뭔가가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으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낮에 다른 형제자매 분들께 여쭤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정보 수집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이 근처에서 실종된 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신발을 발견했지 않나.”
“있잖아요, 우리 그럼 조용히 숨어 다니면 되지 않을까요? 대놓고 다니면 위험하단 뜻이죠?”
카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으로 생각해보자는 거지.”
“몽블랑에게 도움을 받을 순 없겠습니까? 냄새를 맡는다던가...”
발렌타인의 말에 카나페가 아쉽다는 투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생각해봤는데 신발이 없어서 무리에요.”
카즈가 소리 내며 다시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이만한 아이. 짊어지거나 들쳐 매거나...어쨌든 눈에 띄잖아. 시체든지 살아있든지. 그렇다면 어떻게 이동할까?”
“배? 아, 아니지 배까지 옮기는 방법...과자 준다고 하면 멍청한 아이들은 따라가지 않을까요.”
카나페가 자신을 아줌마라 칭했던 아이가 생각났는지 비아냥거렸다.
“마법사가 있어 현혹 마법을...썼다든지요?”
“옆집에서 스프를 사 올 정도로 돈에 대해 아는 애가? 나라면 안 갈 텐데. 제 발로 갔다면 신발이 남았을 리 없다고 생각해.”
“신발이 떨어져 있다는 건 반항을 했다는 증거이니 납치가 확실하다.”
다시 수수께끼 같은 추리가 계속 됐다.
“자루에 넣어서? 신발은 자루에 넣는 과정에서 떨어졌다던가...여긴 시장이 큰 마을이니까 자루쯤 들고 다녀도 눈에 안 띌 것 같은데요.”
카나페가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긁적였다.
“으. 머리쓰는 일은 질색이야. 그래서 카즈 당신이 생각한건 뭔데요? 빙빙 돌리지 말고 얘기 해봐요.”
“내가 뭘 돌렸다고.”
카즈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생각한 건데, 애들이 사라진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며. 안 그래, 기사 나리? 그러면 그 애들 시체는 어디서 발견될까? 꽤 중요한 단서일 거 같은데.”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발견했다고 해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체가 짓물러져있었다고 한데...”
그들 모두 상상한 듯 역겨운 표정을 지었다. 잠깐, 시체가 짓물러져있었다고? 카나페가 뭔가 떠올랐는지 황급히 말했다.
“그렇다면 시체를 하수장에 버리지 않았을까요?”
“하수장입니까!”
“카나페의 말대로 하수장이 가장 가능성이 큰 것 같군.”
“그렇겠습니다. 이곳의 하수장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모두가 대번에 싫은 표정을 지었다.
“저 냄새나는 곳에 가기 싫어요.”
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 말에 카즈가 냉큼 밝은 기색으로 나섰다.
“오, 나도. 빨리 여기서 손 떼자고.”
그러나 이제 와서 손을 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들은 하수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비록 모두가 끔찍해하며 싫어했지만. 카즈는 실망했다.
자르타의 하수 구조는 하수도가 지하에 있어서 하수를 강으로 흘려보내는 구조였다. 도시외각, 강의 하류에 하수가 흘러나가는 길이 있었고 도시 중간 중간에 하수도로 내려갈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았는데.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문이 허술하게 입구를 막고 있었다. 잠겨 있는 자물쇠는 있으나 마나였다. 카즈가 손댈 필요도 없이 카나페가 발로 걷어차니 쉽게 부서졌다. 하수도로 통하는 길은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 구조였다. 하수도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나 손쉽게 찾았지만 아무도 먼저 내려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고약한 악취가 진동하는 그곳에 누가 내려가고 싶어 할까.
“...가위바위보 해서 진사람이 들어갈래요?”
“난 길 안내만 하기로 했으니 빼줘.”
카즈가 잽싸게 빠지며 벽에 몸을 기댔다.
“치사햇.”
“조심하라고. 부잣집은 하수도에서 악어를 키운다는 이야기도 있거든.”
카즈가 놀리듯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본과 카나페, 발렌타인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싸울 때도 이토록 긴박한 긴장감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들은 온갖 요상한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더니 비장하게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 바위, 보!”
“........냥멘이시여.”
“자, 내려가시죠. 인간님.”
“네가 가게 돼서 안심이군. 위험하면 소리를 쳐라.”
카나페가 발렌타인의 등을 떠밀었다. 옆에서 본이 발렌타인을 약 올리는 건지 진심인지 모를 말로 응원했다. 발렌타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쓸쓸하게 하수도로 내려갔다.
사다리에서 발을 내리자 마차 철퍽 하며 축축한 오물이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발렌타인은 그 끔찍한 느낌에 몸을 진저리쳤다. 안은 네모난 통로로 이어져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위에서 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렌타인, 안은 어떤가?”
“으음...아직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냥멘이시여. 발렌타인은 냥멘께 기도했다. 안은 빛이라고는 없는 어둠속이었기에 그는 성표를 들어 빛을 비췄다. 네모난 통로의 벽 양 옆에는 구멍이 조그맣게 나있었는데 그곳에서 하수가 콸콸 거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통로는 양쪽으로 길고, 더 안쪽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철퍽철퍽. 하수가 기분 나쁘게 다리에 감겨들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악취 섞인 바람이 미미하게 불었다. 발렌타인이 코를 찡그렸다.
“......바람?”
그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걸었다. 딱히 주변의 광경이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바람의 세기가 불 때마다 변했다. 앞에 꺾이는 통로가 있는 듯 했다. 그가 직진하자 십자모양의 교차로가 어렴풋이 보였다. 하수가 교차하면서 꾸물텅 다리가 말려드는 느낌이 심해졌다. 발렌타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조심해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발렌타인의 성표를 휘감으며 빛을 꺼트렸다.
“....!...형제님들!!!!!!!!”
무언가가 있었다. 성표가 꺼지자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수도가 어둠에 휩싸였다. 발렌타인이 강하게 소리 질렀다.
“읍....!”
이상한 것이 발렌타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발렌타인은 반사적으로 입을 막은 것을 깨물어 뜯었다. 사람의 살보다는 물텅거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발렌타인이 깨문 것에 별로 큰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것이 꿈틀거리며 발렌타인의 입안을 더 파고들었다.
[피해 1d6+1 : 2]
발렌타인은 냥멘의 도움을 구하며 성표를 강하게 발했다. 다행이 성표가 다시 빛을 되찾았다. 그러자 무언가가 지나가버리듯 입을 막고 있던 그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발렌타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입안이 텁텁하고 찝찝했다. 입술이 따가운 것으로 보아 찢어진 듯했다.
“대체 무엇이었는지....”
발렌타인이 아까 전보다 조심스럽고 느린 동작으로 교차로를 살펴봤다.
[상황파악 2d6 : 10]
교차로는 매우 깜깜하고 하수에서는 검은 거품이 부글대고 있었다. 아까 같이 이상한 것이 곧 튀어나올 것 같아서 발렌타인은 불안해졌다. 그가 왼쪽으로 빛을 비추자 조금 튀어나온 돌 위에 이상한 것이 걸쳐져 있었다. 그것은 검은 색 덩어리 같은 것이었는데 엄청나게 썩은 냄새가 났다. 발렌타인이 그것을 들어올렸다. 촉감이 아까 발렌타인의 입을 막았던 것과 비슷했다. 아마도 그것의 살점 같았다. 살점은 발렌타인의 손 안에서 힘없이 녹아버렸다.
“...오물로 만들어진 몬스터인가...”
발렌타인은 이쯤해서 다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이상 혼자 가다가는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몰랐다. 교차로가 있고 그 앞이 더 길게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동료들에게 돌아가 확실한 준비를 하고 다시 오는 편이 좋았다. 발렌타인이 지상으로 다시 올라가자 동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괜찮아요?”
카나페의 걱정스러운 말에 발렌타인은 있었던 일과 안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했다.
“수고했다.”
“우선은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카나페가 코를 쥔 채로 발렌타인의 바지에 손가락질을 했다. 바지는 시커먼 오물로 뒤덮여 있었고 구역질이 나는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빨리 씻어야겠군. 여관으로 돌아가자.”
그들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발렌타인의 근처에서 멀찍이 떨어져 걸어갔다. 냄새가 너무 지독했기 때문이다. 행색이 지저분한 노숙인 조차 발렌타인을 보며 좀 씻고 다니라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발렌타인이 그 모습으로 여관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여관주인이 소리를 지르며 쫒아 나왔는데 그녀는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몇 번이나 발렌타인에게 퍼부었다. 동료들이 그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봤다. 발렌타인은 조금 슬퍼졌다.
제 6화 - 아이를 찾아서 - (완)
~계속
'구세계의 보석과 잊혀진 영웅 : 던전월드 첫번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7화 - 하수도의 비밀 - (0) | 2017.10.24 |
---|---|
제 5화 - 마탑과 이상한 수도 - (0) | 2017.10.13 |
제 4화 - 구출 작전 - (0) | 2017.10.09 |
제 3화 - 납치 그리고 새로운 동료 - (0) | 2017.08.10 |
제 2화 - 구세계의 보석과 이방인 - (0) | 2017.08.09 |